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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년 9월 24일
In 탄천
성남시의 대표적인 인공 습지는 탄천습지생태원이다. 2007년부터 성남시에서는 송사리습지를 만들어 시범 운영하였는데, 그 결과 탄천의 범람에도 불구하고 송사리가 습지에 머물며 습지 원형이 유지되어 생태 습지를 확대 추진한 것이다. 탄천습지생태원은 2009년 10월 수정구 태평동 7033-1 탄천 둔치 일대에 완공되었으며, 규모는 폭 30m, 길이 800m이다. 면적은 1만 194㎡이고 담수량은 3418㎥이다. 총 18개의 크기와 모양이 다른 연못을 만들어 물길로 연결하였으며 각각의 연못은 서식할 생물에 맞게 수심과 환경이 조성되었다. 탄천습지생태원은 남쪽에서 북쪽 방향으로 정수습지∙잠자리습지∙민물고기습지 2곳∙곤충습지 등이 있다. 탄천습지생태원에서는 어린이집, 유치원생을 대상으로 생태 체험 학습 프로그램을 운영하고 있다. 프로그램은 양지동 환경교육센터에서 운영하는 실내 교육과 탄천습지생태원의 야외 체험 교육이 있고‘성남에코맵’사이트에서 신청이 가능하다. 환경교육센터에서는 2010년 14회 359명, 2011년 19회 483명, 2012년 22회 472명을 대상으로 실내 교육을 실시하였고, 탄천습지생태원에서는 체험 교육을 2010년 15회 463명, 2011년 38회 1256명, 2012년 53회 1691명을 대상으로 실시하였다. 교육내용으로는 생태 자료 설명과 수서생물 설명 및 관찰하기, 찰흙으로 곤충 만들기, 탄천습지생태원 야생화 관찰, 곤충채집 등이 있다. (p.71~7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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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년 9월 22일
In 탄천
탄천관련 자료 모음 1990년대 초, 분당 신도시가 건설된 곳은 성남 시내를 남북으로 관류하는 탄천 주변의 평야지대이다. 탄천은 용인시, 성남시, 서울시를 이어주는 한강의 지류이며, 시의 동서 산록에서 흘러내리는 동막천, 분당천, 상적천 등의 물이 모여 북북서쪽으로 흐르는 간천이다. 따라서 오늘날 성남시는, 동쪽과 서쪽은 산지, 북부는 구릉지, 중앙부는 탄천 유역 평야 지대에 위치하여, 계획적으로 건설된 남고북저형의 도시라고 할 수 있다.(p.33) 다음의 지도는 조선총독부가 1918년에 제작한 1:50,000 지형도이다. 지도에서 보는 것과 같이, 탄천은 현재 모습인 직강화 이전의 구불구불한 유로를 가지고 있었으며, 그 일대는 전부 논으로 이용되고 있는 모습을 볼 수 있다.(p.37~38) 성남시를 남북으로 관통하는 탄천炭川은 용인시 기흥구 구성동 물푸레울에서 발원하여 분당구 석운동에서 흘러내려 오는 동막천과 분당구 구미동에서 합류한다. 합류한 하천은 시의 중심부를 지나 한강으로 흘러들어 간다. 수정구는 남한산성이 있는 청량산의 자락이 탄천을 향해 내려 뻗은 능선, 그리고 그 사이를 흘러 탄천에 유입되는 독정천과, 남한산성의 남문 아래에서 시작하여 양지동과 은행동 사이를 지나고 신흥동과 중동 사이 및 수진동과 성남동 사이를 흘러 탄천에 유입되는 단대천 북쪽을 집중 조성한 인위적 주거 지역이다. (중략) 분당구는 성남 초기의 개발과는 달리 탄천가의 평지를 주거지로 중점 활용하고 매봉지, 형제산, 불곡산 등에서 내려ᄈᅠᆮ은 산자락들은 크게 훼손하지 않았으므로 주거 지역만 놓고 볼 때는 남고북저의 지형이라 할 수 있다. (p.43) 구릉지 산지 이외에 성남시의 평탄지 부분은 제4기의 하천의 충적층으로 탄천과 그 지류 하천들에 의해 형성되었으며 편마암층을 부정합으로 덮고 있다. 대부분 완경사의 넓은 평지로 나타나 대부분 농경지나 시가지로 개발되었다. (p.47) 하천 지형적으로 주변부보다 낮은 곡지를 따라 일정한 유로를 가지며 사면의 경사 방향으로 흐르는 것을 하천이라고 한다. 하천의 물은 유역 면적 내의 지표수에 의해 공급되고, 지하수면과 하도의 하상면이 연결되어 지하수가 하천으로 공급된다. 성남시의 남쪽에서 북쪽으로 흐르는 탄천은 한강 제1지류이다. 다음은 성남시를 관류하는 제2지류에 대한 설명이다. 하천 길이에 관해서는 하천 연장과 유로 연장이 있는데 여기서는 하천 연장을 다룬다. 하천 연장은 해당 하천의 기점에서 종점의 길이를 측정한 것이고, 유로 연장은 해당 하천으로부터 최상류까지의 길이를 측정한 것이다. 탄천 탄천炭川은 성남의 중심부를 남북으로 관통하여 흐르는 하천이다. 기점은 용인시 기흥구 구성동 물푸레울이고, 성남시를 거쳐 서울시 강남구 청담동에서 한강과 합류合流한다. 하천 연장은 32.73㎢, 유역 면적은 303.07㎢이다. 성남시는 1990년대탄천 주변이분당 신도시로건설되면서성장하였다. 탄천이 기록에 처음 보이는 것은『태종실록』이다. 따라서 적어도 조선 초기 이전부터 탄천(숯내)이라 불린 것을 알 수 잇다. 숯내라는 이름은 백제 군사들의 훈련과 조선시대 궁궐과 전시 대비용으로 남한산성에공급하기위해숯을굽던곳에서유래했다고전한다. 용인시 등 지역에서의 난개발로 수질이 악화되어 2002년은 생화학적산소요구량(BOD)을 기준으로 한 수질 등급이 6등급이었으나, 2008년 용인시 수지하수처리장 설치로 수질이 개선되어 2012년 4등급으로호전되었다. 성남시에는탄천을제외한모두11개의준용하천(동막천, 분당천, 운중천, 금토천, 야탑천, 여수천, 상적천, 금곡천, 대원천, 단대천, 독정천)이흐르고있는데, 이들하천모두가탄천으로유입한다. (p.54~55) 인공 습지 성남시의 대표적인 인공 습지는 탄천습지생태원이다. 2007년부터 성남시에서는 송사리습지를 만들어 시범 운영하였는데, 그 결과 탄천의 범람에도 불구하고 송사리가 습지에 머물며 습지 원형이 유지되어 생태 습지를 확대 추진한 것이다. 탄천습지생태원은 2009년 10월 수정구 태평동 7033-1 탄천 둔치 일대에 완공되었으며, 규모는 폭 30m, 길이 800m이다. 면적은 1만 194㎡이고 담수량은 3418㎥이다. 총 18개의 크기와 모양이 다른 연못을 만들어 물길로 연결하였으며 각각의 연못은 서식할 생물에 맞게 수심과 환경이 조성되었다. 탄천습지생태원은 남쪽에서 북쪽 방향으로 정수습지∙잠자리습지∙민물고기습지 2곳∙곤충습지 등이 있다. 탄천습지생태원에서는 어린이집, 유치원생을 대상으로 생태 체험 학습 프로그램을 운영하고 있다. 프로그램은 양지동 환경교육센터에서 운영하는 실내 교육과 탄천습지생태원의 야외 체험 교육이 있고‘성남에코맵’사이트에서 신청이 가능하다. 환경교육센터에서는 2010년 14회 359명, 2011년 19회 483명, 2012년 22회 472명을 대상으로 실내 교육을 실시하였고, 탄천습지생태원에서는 체험 교육을 2010년 15회 463명, 2011년 38회 1256명, 2012년 53회 1691명을 대상으로 실시하였다. 교육내용으로는 생태 자료 설명과 수서생물 설명 및 관찰하기, 찰흙으로 곤충 만들기, 탄천습지생태원 야생화 관찰, 곤충채집 등이 있다. (p.71~72) 지역 생태계 특징 동쪽 경계를 길게 이루는 광주산맥의 지맥인 검단산(542m) 자락과 서쪽 경계인 청계산( 618m), 시의 중앙을 남북으로 관통하여 한강으로 유입되는 탄천이 커다란 생태 축을 이루고, 중간 중간 소규모 산림과 도시공원, 탄천의 지천들과 저수지, 습지들이 성남시의 자연 생태계를 만들어내고 유지한다. 검단산 자락의 남한산성과 성남시에서 가장 큰 산인 청계산에서는 흔히 보기 어려운 야생화와 다양한 종류의 나무를 만날 수 있다. 도심에서 쉽게 접근할 수 있는 불곡산, 영장산 자락에서도 다양한 생태계를 볼 수 있는데 영장산은 생태계 보존이 잘돼 있어 반딧불이 서식지로 알려져 있고, 불곡산은 전체가 산림욕장이어서 분당 주민의 휴식처 역할을 한다. 다양한 종류의 새들이 노닐고 있는 모습을 볼 수 있는 탄천은 도심의 한가운데를 통과해 흘러가기 때문에 성남 시민들이 가깝게 접할 수 있는 자연환경이며 성남시의 탄천 수질 개선 사업과 자연형 하천 복원 사업으로 인해 수계 환경이 안정화되어 많은 물속 생물들이 살고 있고 어류, 새들이 서식하기 좋은 조건을 갖추고 있다. (p.77) 하천과 습지의 식생 1) 탄천 주변의 식생 성남시를 남북으로 흐르는 탄천은 용인시 기흥구 구성동 물푸레울에서 발원하여 한강으로 흘러가는 지류로써 성남시를 관통하는 유로 연장은 15.85㎞이다. 관내 탄천의 지천으로는 용인시와 경계를 이루고 있는 동막천, 율동공원과 중앙공원을 관류하는 분당천, 낙생저수지에서 판교지구를 흐르는 운중천, 금토천, 도촌지구를 거쳐서 야탑동으로 흐르는 야탑천, 여수천, 상적천 등이 있다. 그리고 사기막골에서 흐르는 물줄기인 복개천인 독정천이 있다. 탄천 주변 식생으로는 도심을 흐르는 인공 하천이 물이 흐르면서 자연적으로 형성된 여울과 소, 하중도 주변에 나무와 풀들이 자라면서 야생 동식물이 살아갈 수 있는 공간이 되었다. 특히 황새울은 황새가 날아오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복원된 생태 하천이다. 탄천의 식생을 구조별로 간략하게 살펴보면, 첫째, 호안과 하중도 주변 식생으로는 버드나무와 갯버들, 달뿌리풀, 고마리, 갈대 등이 군락을 이루고 있어 새와 수서생물들의 산란처와 서식지로서의 역할을 해주고 있다. 수내동 수내교 부근에는 하중도가 발달하여 자연형 하천에 가까우며, 분당천과 탄천의 합류 지점인 황새울, 여수천과 탄천의 합류 지점에는 갯버들이 군락을 이루고 있다. 둘째, 둔치에는 수크령과 물억새, 토끼풀, 붉은토끼풀 등이 자라고 있어 제방과 주변 숲에서 살아가는 곤충과 야생 동물의 은신처로 사용되고 있다. 성남동 부근둔치에는 생태 복원의 일환으로 습지생태원이 조성되어 시민들이 습지를 체험할 수 있으며 또한 탄천을 산책하는 사람으로 하여금 정서적인 안정감을 느낄 수 있도록 하고 있다. 셋째, 제방에는 벚나무, 스트로브잣나무, 단풍나무, 개나리, 조팝나무, 참느릅나무 등이 군데군데 군락을 이루고 있다. (p.89~90) 2) 습지의 식생 습지는 유기물을 축적하고 운반하며 식물, 어류, 조류 등의 다양한 생명들은 운반된 유기물을 흡수하여 오염을 정화하는 과정을 반복함에 따라 결과적으로 생물의 다양성을 보장해주는 역할을 한다. 즉 물이 흐르고 고이는 과정을 반복하여 다양한 생명체가 살아갈 수 있는 서식처를 제공하고 이곳에서 성장한 생명체들은 습지 생태계의 균형을 유지시켜주는 역할을 하게 된다. 습지식물에는 완전히 물 아래 잠겨있는 침수성과 뿌리와 줄기 일부분이 물 아래 잠긴 노출성, 그리고 물가 근처에 있는 육상성 식물이 있다. 물 순환과 생물 서식에서 중요한 기능을 하고 있는 습지는 우리가 살아가는 도시환경에 보물과 같은 존재로 도심의 온도 상승을 저감시키는 작용과 더불어 다양한 생물들의 서식처로서 생태적, 보전적 가치가 있는 곳이다. 성남시에는 크고 작은 습지가 74곳이나 분포하고 있으며, 이 중 중요 습지 33곳, 일반 습지 32곳, 관리 습지 9곳 등이 자리 잡고 있다. 대표적인 습지로는 남한산성유원지 계곡, 사기막골 계곡, 청계산 일대 산간 계곡, 금토천 주변, 대장동 논과 밭 주변의 웅덩이 형태의 습지가 있다. 또한 율동 상류의 산간 습지는 도심 속의 습지로는 아주 중요한 자연 생태계의 한 역할을 담당하고 있다. 또한 인공으로 조성된 탄천습지생태원과 맹산생태학습원은 다양한 습지생물들을 관찰할 수 있는 체험학습 공간으로 시민들에게 습지의 중요성을 계몽하여 좋은 호응을 얻고 있다. 이러한 습지 지역에는 다양한 생물들이 서식하고 있는데, 습지 주변에서 살아가고 있는 수변식물로는 물봉선, 노랑물봉선, 꽃창포, 노랑꽃창포, 고마리, 여뀌, 미나리냉이, 자귀풀, 개구리자리, 젓가락나물, 미나리아재비, 동의나물, 피나물, 앵초, 미국가막사리, 큰잎피막이, 부처꽃, 골풀, 올방개 등 다양한 종류의 식물이 자라고 있다. 정수식물로는 부들, 줄, 연꽃, 달뿌리풀 등이 자라고 있으며, 부엽식물로는 마름, 어리연꽃, 노랑어리연꽃, 수련 등이 자라고 있다. 또한 부생식물인 개구리밥, 생이가래 등과 침수식물인 물질경이, 나자스말 등도 자라고 있다. 동물로는 깨끗한 계곡에서 살아가는 강도래류, 하루살이류, 날도래류, 다슬기, 가재, 측범잠자리류, 메추리장구애비, 버들치를 비롯하여 북방산개구리, 한국산개구리, 무당개구리, 두꺼비, 도롱뇽, 아무르장지뱀 등 양서류와 파충류들도 서식하고 있으며 반딧불이가 서식하는 공간도 다수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또한 탄천과 지천인 분당천, 여수천, 운중천 주변에는 잉어를 비롯하여 각시붕어, 갈겨니, 피라미, 얼룩동사리, 몰개 등의 어류와 참게, 장구애비, 게아재비, 물달팽이류, 아셀러스, 줄날도래류 등 다양한 동물이 서식하고 있으며, 흰뺨검둥오리, 청둥오리, 쇠오리, 비오리, 왜가리, 쇠백로, 해오라기 등 조류도 다수 서식하고 있다. 이처럼 많은 동식물들이 서식하고 있는 습지는 특히 도심 속에서 더욱더 중요한 역할을 담당하는 공간이다. 습지를 통해 자연 생태계의 순환이 원활히 이루어지고 순기능을 담당하고 있는 도심의 습지를 더욱더 아끼고 사랑하는 마음을 가져 쾌적하고 아름다운 성남 습지의 모습을 간직할 수 있도록 다 같이 노력해야 할 것이다. (p.90~91) 동물상 조류 성남시는 산과 하천이 어우러진 풍부한 자연환경으로 둘러 싸여 있어 비교적 많은 새들을 만날 수 있는 곳이다. 중앙을 가로지르는 탄천을 중심으로 7개의 크고 작은 저수지들이 있어 새들이 서식하기 좋은 조건을 갖추고 있으며, 탄천 수질 개선사업과 하천 복원 사업 등으로 인해 수생식물과 저서생물이 살 수 있는 환경으로 조성되어 새들이 점차 늘어나고 있다. 탄천 지역에서 많이 볼 수 있는 대표적인 물새로는 오리과인 흰뺨검둥오리가 가장 많았으며, 쇠오리, 청둥오리, 집오리, 고방오리, 논병아리와 백로과인 쇠백로, 왜가리, 중대백로, 중백로, 해오라기, 할미새과인 백할미새, 알락할미새 등이 있다. 그중 텃새화 된 겨울철새 흰뺨검둥오리와 여름철새 쇠백로, 왜가리를 자주 볼 수 있다. 새들이 주로 서식하는 곳은 사람들이 많이 다니는 지역보다는 하중도와 천연 식생이 우거진 곳으로 보아 앞으로도 탄천의 수질 개선과 생태 복원을 위한 노력이 계속되어야 할 것이다. (p.99) 어류 성남시에서는 2003년부터 탄천 16㎞ 구간의 민물고기의 종수, 개체수, 서식 환경 등을 파악해 왔으며, 콘크리트를 걷어내고 어도와 여울을 만들어주는 등 자연형 하천으로 복원하는 노력을 하고 있다. 또한 해마다 개체수가 줄어드는 민물고기를 풀어주고 잘 살 수 있도록 서식 환경을 마련해 준 결과, 피라미, 붕어, 참붕어, 잉어, 누치, 모래무지, 밀어, 얼룩동사리, 미꾸리, 메기 등 총 8과 22종의 다양한 개체종이 발견되었다. 탄천에는 피라미가 우점종이며, 대형 물고기인 잉어와 붕어도 많이 서식하고 있다. (p.100) 양서류∙파충 두꺼비는 복정동삼거리, 안골 등 개발이 덜 된 외곽 지역 인근에 서식하며, 청개구리, 맹꽁이, 개구리, 북방산개구리는 인가 주변의 숲이나 탄천과 그 지류 부근에 서식하고 있다. 또한 수정구 태평동 탄천습지생태원에서는 전국에 서식지가 10여 곳밖에 없는 멸종위기 야생생물 2급으로 지정된 금개구리가 발견되었다.(p.100) (p.102~103) 저서성 대형무척추동물 성남시는 2009년부터 탄천에 서식하고 있는 저서성 대형무척추동물을 조사하여 하천의 건강성 상태를 평가하고 탄천 수질 개선의 기초 자료로 사용하고 있다. 1년에 2~3회 용인 경계 수중보 아래에서 탄천 합류 지점인 창곡천까지 20개 지점을 모니터링하고 있으며, 조사 방법으로는 정성 조사 방법과 정량 조사 방법을 병행하였다. 저서성 대형무척추동물이란 수계의 바닥(하상)을 서식처로 하여 현미경 없이 육안으로 식별할 수 있는(일반적으로 1㎜ 이상) 연골 및 뼈의 내골경이 없는 동물군을 총칭한다. 그중 수서곤충은 물속에서 알이나 유충 단계로 겨울을 지내고 봄과 여름에 걸쳐 성충으로 우화하며 대부분 1년 1세대이지만, 1년 2세대 또는 다세대 및 2년 1세대 또는 다년 1세대인 경우도 있다. 대표적으로 볼 수 있는 수서곤충으로는 날도래목의 줄날도래와 꼬마줄날도래, 파리목의 깔따구, 하루살이목의 개똥하루살이, 입술하루살이, 네점하루살이, 부채하루살이 등이다. 이외에 플라나리아(편형동물문), 왼돌이물달팽이(연체동물문의 복족강), 아셀러스(절지동물문의 갑각강), 돌거머리(환형동물문의 거머리강) 등도 많이 볼 수 있다. (p.103~104) 성남시 자연환경 특성 수계는 총 8개소이며 용인시 기흥구 구성동 물푸레울에서 발원한 탄천이 시의 중앙부를 관 류하여 한강으로 유입되고 있다. 또한 지방 2급 하천으로는 동막천, 분당천, 운중천, 금토천, 야탑천, 여수천, 상적천 등 총 46.87㎞의 유로 연장을 형성하고 있다. 탄천 수계에 속하는 저수지는 동막천 상류부에 위치하는 낙생저수지, 금토천 및 운중천 수계 내 운중저수지, 상적천 수계의 대왕저수지, 분당천 수계의 분당저수지(율동공원), 서현저수지 등 5개의 저수지가 위치하고 있다. (p.112) 최근 수정구 태평동 탄천습지생태원에서 습지 내 덤불 위에 앉아 있는 금개구리의 모습이 공개되었다. 한국 고유종인 금개구리는 연두색 몸통 위 등줄기에 두 개의 선명한 금색 줄을 띠고 있는 것이 특징이며, 전국적으로 파악된 서식지가 10여 곳밖에 안 될 정도로 희귀종으로 알려져 있다. 또한 탄천습지생태원 갈대밭에 국내에서 보기 드문 겨울 철새 알락해오라기가 서식하는 것도 발견되었다. 알락해오라기는 경기도 이남이나 낙동강 하류에 주로 서식하는데 탄천에서 발견되었다. 갈대밭에서는 더 갈대처럼 보일 정도여서 움직이지 않으면 포착이 어려워‘은신술의 달인’으로 불린다. 또한 탄천에서는 지난 9월 깨끗한 물에만 사는 은어銀魚가 발견된 바 있다. 이처럼 탄천에는 어종이 풍부하고 먹을 것이 많아 쇠백로, 청둥오리, 논병아리 등 겨울 철새들이 무리지어 서식한다. 탄천 수변 공간은 2012~2014년 환경부 자연 생태 복원 우수 마을로 다시 지정되기도 하였다. 이는 2003년부터 시작한 생태계 복원 사업으로 탄천 생명력이 회복된 결과이기도 하다. (p.113) 생활하수 개선과 친수 환경 조성 성남시의 수질 오염의 주원인은 생활하수, 공장 폐수, 축산 폐수 등이며 이 중 가정에서 버려지는 생활하수가 가장 큰 원인이라고 할 수 있다. 생활하수에는 음식물쓰레기, 합성 세제, 분뇨 등이 포함되어 있어 탁도의 저하, 부영양화, 물속 산소량 부족 현상 등을 일으키며 미생물의 혐기성 분해 작용에 의한 유해 물질까지 발생시켜 하천 등을 오염시키고 있어 인구 증가가 계속되는 한 악화는 지속될 것으로 예상된다. 성남시에서는 물 환경의 개선을 위해 수질 규제 기준의 엄격한 적용, 지속적인 지도와 계몽을 통한 오수 및 폐수 배출량의 감량, 환경 기반 시설 확충을 통한 물 처리 능력의 배양, 수질 감시 및 수질 사고 대처를 위한 수질 관리 시스템 확립, 시민이 쉽게 접할 수 있는 친수 환경을 조성하고자 기본 방향을 설정하였다. 구체적으로는 탄천에 수질 정화 시설을 설치하고 하천 오염원 및 오염 실태 조사강화 및 관리 체계 구축을 통해 오염 사고에 대비하고 있다. 또한 오수∙폐수 배출업소에 대한 지도 단속을 강화하고 생활 오수 줄이기 운동 전개, 탄천 상류인 용인시의 오염 부하량 증가로 유입부의 수질 오염 증가에 대한 중장기적인 대책 수립, 탄천으로의 생활하수 직접 유입에 대한 대책 마련, 물 관리 체계의 정비를 비롯하여 환경친화적 하천 및 호소의 개발 및 관리 전략을 마련하고 있다. (p.114) 신석기시대 성남시를 관통하는 탄천은 한강과 합류하는 지점에서 멀지않다. 한강 가에 암사동 유적이 있어 성남시 일원의 수정구 금토동∙수진동과 분당구 삼평동에서도 신석기 사람들이 활동했을 것으로 판단된다. 삼평동 일원에는 경작 유구와 빗살무늬토기 및 경질토기 편이 채집되었다. 판교박물관에는 성남 지역에서 찾아낸 방추와 조개껍질 장신구 유물들이 전시되어 있다. (p.130) 청동기시대~초기 철기시대 성남의 경우 분당 신도시 개발 때 고인돌 180기 이상이 발견되었다. 탄천을 중심으로 주변의 야산이나 언덕에는 고인돌이 산재되어 있다. 중원구 도촌동과 분당구 야탑동∙수내동∙정자동∙서현동, 수정구 사송동 일대는 지표 조사와 발굴 조사를 통해 고인돌 유적을 발견하였고, 분당구 삼평동과 수정구 사송동에서는 청동기시대의 취락 총 27기가 확인되었다. 이곳에서 반월형석도∙석부∙석촉∙방추차 등 청동기시대의 유물 약 70점이 출토되었다. 그리고 중원구 여수동에서도 청동기시대의 주거지가 확인된 바 있다. (p.149) 지형 이와 관련하여「경강부임진도京江附臨津圖」에는 남한산과 청계산을 사이에 두고 탄천炭川이 용인에서부터 북류하여 한강에 들어가는 형세가 잘 표현되어 있다. 산과 함께 풍수의 큰 줄기를 이루는 것이 곧 물의 흐름이다. 성남시의 동서東西에 큰 산줄기가 있으므로 시의 중심부를 흐르는 탄천은 큰 굴곡 없이 직선상으로 북류하고 있다. 『남한지』에는 탄천이 용인 석성산에서 발원하여 서쪽으로 흘러 장장포蔣蔣浦가 되고 광교산을 지나 북쪽으로 꺾여 낙생면, 지금의 판교를 지나면서 험천險川이 되어 삼전도로 들어간다고 하였다. 탄천의 발원지는 경기도 용인 북부 지역에 위치한 석성산과 용인시 기흥구 청덕동의‘청덕천’, 마북동의‘마북천’이 합해져서 탄천이 되었다. 용인에서 발원한 탄천이 성남시로 넘어오면서 60여 개의 크고 작은 하천이 모여 드는데, 독정천∙단대천∙대원천∙여수천∙야탑천∙분당천∙동막천∙운중천∙금토천∙상적천 등이 주요 지천이다. 탄천 주류의 총연장은 35.6㎞이고 이 중 약 25㎞ 구간이 성남시의 중심부를 지나 서울시 송파구∙강남구를 거쳐 한강으로 유입된다. 탄천의 유역 면적은 302㎢이다. 조선시대에는 북류하는 탄천으로 인해 성남시가 위치하였던 곳의 풍수적 조건이 높이 평가되지 못하였던 것으로 보인다. 조선시대 광주廣州의 중심지였던 곳은 지금의 하남시와 남한산성으로서 고건 전 총리가 평가한 것과는 달리 읍치의 입지로 적당하지 않았던 점과 광주 경계의 서쪽에 치우쳐 있었기 때문으로 보인다. (중략) 도시 입지에 가장 적합한 충적지가 탄천 연안에 형성되어 있지만 대상으로 분포하고 있어 도시가 들어서기에 좋은 조건을 갖추지 못했다는 말이 있으나 실상은 성남비행장의 입지와 큰 관계가 있다. (p.152~154) 『택경』에는“산 하나 물 한 줄기가 다정하게 생긴 데는 소인이 머물 곳이고, 큰 산과 큰 물이 국소局所로 들어오는 곳은 군자가 살 곳이다”라고 하여 그 지형의 국세局勢에 따라 사는 사람의 신분 계층을 구분하기도 하였다. 여기서 말하는 큰 산은 청계산이 해당될 텐데, 탄천을‘큰 물’이라고 할 수는 없을 것 같다. 이중환이 저술한『택리지』에서는 경기도 광주에 대해“성 밖의 산 밑에는 살기殺氣가 감돌고 있다. 만일 사변이 생기는 날이면 반드시 전쟁을 치러야 할 지역이다. 그래서 광주 온 고을은 살 만한 곳이 못 된다”고 하였다. 그것은 병자호란의 주 무대인 남한산성에서 조선의 임금과 청군이 대치하였던 데서 비롯된 인식이라 할 수도 있지만, 대체적으로 북류하는 하천을 꺼려했던 조선시대의 풍수적 인식이기도 하다. (p.156) 북류北流하는 탄천을 고려하지 않고 건물 배치를 자좌오향의 남향으로 정함으로써 살殺과 풍風을 그대로 받아들이는 형세가 된 것이다. 비보裨補를 위해서 물길을 조정하고, 시청 앞에 공원 숲을 조성하였으나 기본적인 문제를 해결하기 어려운 것 또한 사실이다. 더구나 탄천은 용인시에서 발원한 물줄기로서 성남시가 외부적인 문제에도 심하게 휘둘리는 모양새가 되고 말았다. 탄천은 서울시 강남구 대치동 부근에서 양재천을 합하고 강남구와 송파구의 경계를 이루며 흐르다가 강남구 청담동과 송파구 신천동 사이에서 한강으로 흘러든다. 조선시대에는‘검내’라고 불렸으며, 지금도 숯내∙숫내∙탄천 등으로 불린다. 『금낭경錦囊經』에서는 물의 흐름에 대해“꼬리를 감춘 듯 흘러가지만 완전히 흘러가지 않고 회환回還하여야 하며, 부드럽게 흐르면서, 주산을 돌아보며 아쉬워하듯 머물고자 해야 한다”고 하였다. 즉 유장하게 흘러가되 거세거나 약하면 안 되고, 완만하고 유장하게 흘러가면서 주산을 되돌아보는 듯해야 한다는 것이다. 그렇게 보면 성남시의 주하천인 탄천은 청계산 동쪽에서 북류하여 한강과 합류하는 지점에서 북서쪽으로 굽어져서 마치 청계산을 되돌아보는 듯한 모양새여서 좋아 보이기도 하지만 탄천 자체가 유장한 물의 흐름이라 할 수는 없다. 한편 성남시의 정북 및 정남 방향은 탄천으로 인해 열려 있는 형국이다. 그래서 탄천 연안의 충적지 사이로 조선시대 6대로 중의 하나인‘동래로’가 관통하였으며, 1~2㎞ 간격을 두고 탄천과 거의 평행하게 놓인 393번 지방도는 조선 후기 전국적인 규모의 큰 시장이었던 송파장과 한성을 잇는 매우 중요한 상업로가 되었던 것이다. 즉 북류하는 탄천을 따라 지방의 물화物貨도 성남을 통과하여 서울로 모여들게 되어 있었던 것이다. 전통적으로 재화財貨가 이곳에 머물러 있기보다는 지나가는 형국이었던 것이다.(p.160) 『신증동국여지승람』속의 성남 『신증동국여지승람』광주목은 권6의 경기도 제일 앞부분에 수록. 산천 항목에는『세종실록』지리지보다 더 많은 내용들이 기록되어 있어, 검단산 외에도 청계산淸溪山∙대모산大母山∙일장산日長山∙조곡산早谷山 등 12개의 산과 천천현穿川峴∙대쌍령大雙嶺∙가마령佳 嶺 등 6개의 고개, 그리고 하천과 여울, 나루 등 광주목의 주요 지형지물이 적혀 있다. 이 중 현재의 성남시의 영역 안에 있는 것으로는“주 남쪽 20리에 있다”고 쓰여 있는 영장산靈長山과, “주 서쪽 30리에 있다”는 기록과 함께 승려 선탄禪坦이 고개를 소재로 쓴 시가 부기되어 있는 천천현, 그리고“주 남쪽 30리에 있는데 삼전도三田渡로 들어간다”라고 쓰여 있는 탄천炭川을 들 수 있다. ‘숯내’라고도 불리는 탄천은 성남시를 관통해 흘러 한강으로 흘러드는 시의 가장 큰 하천이다. (p.180~182) 이들의 행적을 살펴보면, 이집은 고려 말기의 문신으로, 문장이 뛰어났으며 이색(1328~1396), 정몽주鄭夢周(1337~1392) 등과 교유하였다. 그는 고려가 망하자 현재의 서울시 강동구 둔촌동에 은거하였는데, 그의 호인 둔촌遁村이 현재의 마을명이 되었다. 이집의 아들 삼형제 중 장남인 이지직은 탄천변에 은거하여 탄천을 호로 사용하였으며, 이후 후손들이 오늘날의 중원구 상대원동과 하대원동, 그리고 분당구 야탑동 일대에 세거하게 되었다. (p.183) 19세기 중반 읍지 속의 성남 『광주부읍지』 『광주부읍지』는『여지도서』에 비해 그 내용이 풍부해졌다. 예를 들어 산천조에는 더 많은 산과 하천이 기록되어 있는데, 성남 지역에 해당하는 것으로 천림산과 험천險川이 추가되었다. 천림산은『세종실록』지리지에 봉수가 있다고 언급된 천천산으로, 『광주부읍지』에는“주 남쪽의 대왕면에 있다”고 기재되어 있다. 험천은 주 남쪽의 낙생면에 있다”고 기록되어 있는데, 현재는 동막천東幕川이라 불리는 하천이다. 이 하천은 광교산과 바라산 골짜기에서 발원하여 낙생저수지를 거쳐 성남시와 용인시의 경계를 이루면 흘러내리다가 탄천에 합류하는데, 머내∙머흐내라고 불리기도 한다. (p.189~190) 1700년 이전의 지도 炭川(숯내)13은 광주목 관내에서 한강으로 흘러가는 가장 큰 하천 중의 하나였기 때문에 기록되었는데, 현재는 표기된 한자의 소리를 따서 탄천이라 부르고 있다. 현재 탄천은 발원지부터 한강에 합류되는 모든 구간을 가리키지만 옛날에는 수정구 태평동에 있던 炭洞(숯골)과 壽進洞(수진골∙궁골) 구간에서 숯내라고 불렀다. 그 밖의 구간에서는 분당구 동원동의 遠川(머내)이나 서울시 송파구의 三田渡(삼밭나루)처럼 다양한 이름으로 불렸다. (p.214) 첫째, 穿呼川(다리내[고개])은 하천이 아니라 고개의 이름 때문에 표기된 것인데, 『청구도』에서는 마치 炭川(숯내)을 가리키는 것처럼 표시하였다. 둘째, 樂生驛의 위치는 炭川(숯내)의 동쪽에 있어야 하는데, 서쪽인 樂生面에 있는 것으로 판단하여 표시하였다. (p.227) 백제시대 지명 숯내(탄천炭川) 숯내는 용인시 기흥구 구성동에서 발원하여 북쪽으로 흘러 풍덕천을 이루다가 분당구 구미동 677-1번지 앞에서 동막(험)천과 합류하여 흘러서 백현동에서 운중천과 금토천을 합하여 성남 시내를 관통하여 서울시 송파구를거쳐 한강으로 가는 큰 냇물이다. 숯내[炭川]의 이름은 백제 초창기에는 돌내[石川, 『삼국사기』]로 불리었고, 『청구도』에 보면 한강 쪽인 하류는 까치내[鵲川], 중류는 뚫내[穿呼川], 상류는 허무니내[險川]로 되어 있다. 또『대동여지도』와『동여도』의 경우, 하류는 학여울[鶴灘], 중류는 숯내[炭川], 최상류는 먼내[遠于川 또는 遠川]로 기록되어 있으며, 『세종실록』에는 상류 지역 중 구미동과 정자동 앞내는 금탄金灘으로 불렸다고 기록으로 전해오고 있다. 백제 시조 온조왕이 하남위례성으로 이도하고 창곡동에 세자궁을 짓고 군사 훈련을 시켰는데 수만 명의 군사들에게 밥과 국을 끓여 먹이고 우마牛馬에게도 죽을 쑤어 먹일 때에 수백 마차의 장작을 때었는데 장작을 땐 후의 물의 자정自淨 능력이 뛰어난 숯을 시냇물에 버리고 가서 시냇물이 모두가 숯으로 뒤덮여 숯이 내를 이루었다고 하여 숯내라고 부르다가 한문 표기로 탄천炭川이라고 표기表記한 것이다. 숯내라고 이름을 지은 것은 백제 군사의 훈련과 관련된다. 이들은 창곡동 태자궁에서 숙식하면서 송파에서 궁내동을 지나 수지 일원까지의 훈련 코스와 남한산 아래에서 영장산과 갈마치를 넘어 광주를 돌아 대지고개로 하여 성덕산까지의 훈련코스와 서쪽으로는 청계산 일대의 야산의 지형지물을 이용하여 반복되는 군사 훈련을 하였다. 일부 학자들은 백제의 정병이 약 5~6만 명으로 추산하고 있는데, 근거는 근초고왕이 고구려를 칠 때에 3만 명을 동원하였다는 근거에 기인하고 있다. 전병력이 전쟁에 동원될 수는 없고 절반 정도인 3만 명으로 고구려를 침공하였을 것이라는 계산이다. 창곡동 태자궁에서 군사들을 훈련시키려면 군사들에게 먹일 밥과 국을 끓여야 하고 동원된 우마牛馬에게 죽을 쑤어 먹여야 하는데 군사의 수를 2000명만 계산하더라도 하루에 60짐의 장작을 때게 되는데 한 달이면 60×30=1800짐이 된다. 한 마차에 6짐을 싣는 것으로 계산하면 1800÷6=300마차 분의 장작을때어야 하고, 1년이면 3600마차의 엄청난 장작을 소비하게 된다. 또 조선 중종 때까지는 정금원이라는 역원이 있었고 이 일대를 정금원 들이라고 불렀고 송파에서부터 궁내동톨게이트까지가 대열大閱이라는 군사 훈련장이었다. 왕이 직접 군사 훈련을 보면서 작전 능력과 부대 전술 훈련을 평가하고 개인 무예를 관찰하여 군사들이 왕의 눈에 들거나 경합에서 승리하면 출세가 보장되는 전국의 군사를 집결시켜서 하는 훈련이었다. 이때 군사의 수효가 11만 명에서 12만 명이었다는 것이『조선왕조실록』에 나온다. 11~12만여 명이 십여 일간 훈련을 하려면 수천 마차의 장작을 때어야 하였고 이때에 나오는 숯을 물에 버리고 갔으므로 숯이 시내에 가득하다고 하여 붙여진 이름이 숯내이다. (p.245~246) 촌락의 형성 성남 지역은 백두대간에서 갈라져 나온 광주산맥의 한줄기인 남한산과 검단산의 구릉 지대와 청계산 사이에 있는 탄천을 중심으로 도시가 형성되었다. 본시가지는 주로 남한산성에 가까운 영장산∙검단산의 구릉 지대와 단대천을 중심으로 성립되었고, 분당 신도시 건설로 탄천을 중심으로 한 분당과 판교 지역의 평야를 중심으로 한 신시가지가 형성되었다. 한강 유역에서 가까워 일찍부터 주거지가 형성되었다고 할 수 있다. 신석기시대의 주거 생활은 암사동 선사 주거지와 유사한 주거지를 형성하였을 것이다. 성남 지역의 탄천변은 한강과 동일한 조건을 가진 주거지였을 것으로 보이는데, 주거가 용이한 강가, 구릉, 평야로 이루어졌기 때문이다. 단대천 주변이나 탄천변, 청계산 등지는 수렵 생활이나 농경 생활을 영위하기에 적합한 지역이었다. (p.307~308) 근대 이전의토지 이용 지금의 성남 지역은 문형산∙구발산∙청량산 등지의 서사면에 자리하고 있으므로, 탄천변을 제외하면 비교적 완만한 경사지가 형성되어 있던 곳이다. 따라서 조선시대에는 하천 변의 논보다 산사면의 밭이 더 일반적인 토지 이용이었다. (p.331) 지금의 성남 지역은 한강의 지류인 탄천이 남에서 북으로 흐르고 있고 주변으로는 비교적 편평한 농경지가 조성되어 있었다. 이들 농경지 가운데 밭으로 이용되던 것이 수리 시설의 확충 및 개간 작업을 통해 농업 생산량이 많은 벼농사 지역으로 전환된 것으로 이해할 수 있겠다. 과거의 농경 활동에서 벼농사와 밭농사는 모두 필수적인 경제 활동이었지만, 밭농사에 비해 벼농사가 많은 인구를 부양할 수 있는 부양력이 높은 토지 이용이었다. 고려시대와 조선시대에는 군량을 충당하기 위하여 변경 지역이나 군사 요충지에 농경지를 설치하였다. 조선시대에 광주군에는 남한산성이 있었으며, 성에 주둔하던 병력의 군량을 충당하기 위하여 둔전이 설치되었다. 당시에 둔전은 남한산성 서사면의 탄천변에 조성되었다. 둔전은 조선시대까지 이어져 왔으며, 둔전에 접한 마을의 이름은 둔전이었다. 수정구 고등동에는 지금까지 자연 마을인 둔전屯田이 있다. 본래 광주군 대왕면에 속하였던 지역으로 둔전촌이라 불리던 곳이, 1914년 행정 구역 통폐합에 따라 둔전리가 되었고, 성남시에 편입된 이후 법정동 둔전동으로 불리고 있다. 지금은 대부분 개발 제한 구역과 군사 보호 구역으로 지정되어 있으며, 주민들은 농업에 종사한다.(p.332) 한양으로 가는 길목이었던 조선시대 교통로 용인시 기흥구 구성동 물푸레울에서 발원하여 북류하다가 한강으로 유입하는 총연장 35.62㎞(성남시 통과 구간 15.85㎞)의 탄천이 흐른다. 탄천 주변 지역은 저평한 충적지로 이루어져 있어서 하천변을 따라 일찍부터 소로가 발달할 수 있는 여건이 조성되었다. 이러한 지리적 특징은 성남 지역에 일찍부터 중요한 교통로는 물론 봉수 등이 발달할 수 있는 요인으로 작용하였다. 성남시 탄천(http://tancheon.kr) (p.369) 1750년대에 제작된 것으로 알려진「조선지도」(광주)에는 당시의 주요 간선 도로가 붉은색으로 표기되어 있다[지도 1]. 지금의 성남시에 해당하는 지역으로는 탄천의 서쪽에서 남북 방향의 교통로가 보인다. 이 도로는 한양에서 시작하여 한강 이남의 양재역을 경유한 후 남쪽으로 뻗어 탄천 서쪽의 낙생면에서 판교역板橋驛을 거쳐 남쪽으로 연결되는데, 조선시대의 6대로 가운데 하나인 제4로(동래로)의 구간으로 볼수 있겠다. 탄천의 동쪽으로는 송파와 남한산성을 거쳐 지금의 광주시를 통과하여 경안으로 이어지는 도로가 확인된다. 18세기 후반(1789~1795)에 제작된 것으로 전해지는『여지도』(광주)에서도「조선지도」(광주)와 흡사한 교통로가 표기되어 있다[지도 2]. 이 두 지도의 차이점이라면 탄천 동쪽으로 발달한 도로가 통과하는 구간이 서로 다르다는 것이다. 즉「조선지도」(광주)에서는 남한산성을 통과하여 남쪽의 경안으로 이어지지만, 『여지도』(광주)에서는 남한산성의 서사면으로 도로가 통과하면서 지금의 성남시 본시가지 일대를 경유하여 이현梨峴을 거쳐 경안으로 이어진다. 탄천 서쪽으로 발달한 도로는 용인에서 둘로 나뉘었다. 동쪽으로 분기한 도로는 양지陽智로 이어졌고 남쪽으로 뻗은 도로는 안성으로 연결되었다. 한편 탄천의 동쪽에서 경안으로 뻗은 도로는 이천을 경유하여 충주로 연결되었다. 이상에서 보는 것처럼, 1700년대의 교통망은 한양을 중심으로 연결되는 남북 방향 위주로 발달하였다. 즉 성남 지역의 서쪽에 자리한 과천 지역으로 연결되는 도로망은 발달 상태가 상당히 미약하였다. (p.371~372) 『대동여지도』에 비해 조금 늦은 시기에 제작된「1872년 지방지도」(광주)에는 광주 읍치가 있던 남한산성 서사면으로 탄천이 북류하여 한강에 합류하고 탄천의 동쪽과 서쪽으로 도로가 뻗어 있다. 이들 도로는 송파에서 시작하여 지금의 서울시 송파구와 강남구 일대를 경유하는데, 동쪽으로 뻗은 도로는 남한산성 서사면을 끼고 경안으로 연결되고, 탄천의 서쪽으로 뻗은 도로는 대왕면과 낙생면을 경유한다. 이와 별도로 양재역에서 뻗은 도로는 천림산을 경유하여 낙생면으로 연결되며, 이 도로가 통과하는 낙생면에는 판교주막이 형성되었음을 볼 수 있다. 낙생면의 탄천변에는 낙생역이 설치되어 있기도 하다. 낙생역은 이전 시기의 지도에서는 판교역으로 표기되었던 곳인데, 「1872년 지방지도」에서 처음으로 낙생역 지명이 등장한다. (p.372) 영남대로에 자리한 낙생역 조선시대에는 양재역과 낙생역 사이에 율현점栗峴店이 있었으며, 여기에서 행로자에게 숙박 및 편의 시설을 제공한 것으로 전해진다. 율현점은 탄천 서쪽에 자리한 지금의 서울시 강남구 율현동의 지명이 유래한 밤고개에 있던 것이지만, 지금은 밤고개의 흔적을 찾아보기가 어렵다. (p.376) 개발에서 빗겨간 일제강점기 교통로 한편 탄천 서쪽으로는 서울에서 부산으로 연결되는 도로가 양재에서 출발하여 신원을 통과한 다음 성남에 들어서서 판교板橋와 궁안宮安을 경유하여 남쪽의 수원으로 이어지는 모습을 볼 수 있다. 이구간은 지금 경부고속도로가 통과하는 노선과 대체로 일치한다. 지금의 성남 시가지는 탄천의 동쪽에 자리하고 있다. 그러나 구한말에는 탄천의 동쪽으로는 도로망의 발달이 상대적으로 더디게 이루어졌다. 탄천의 동쪽에 자연 마을은 많이 들어서 있었지만, 이 일대가 서울에서 남쪽으로 통과하는 주요 경유지가 아니었기 때문으로 풀이된다. (p.377) 성남 지역의 동쪽으로는 하남의 덕풍을 지나 경안으로 연결되는 도로가 상대적으로 발달하였지만, 이 도로는 성남 지역을 직접적으로 통과하지는 않았다. 서울의 송파에서 창곡동을 거쳐 당시에 광주읍 소재지가 있던 남한산성으로 이어지는 도로가 비교적 양호한 수준이었고, 지금의 성남 시가지를 가로지르는 매우 조잡한 수준에 불과하였다. 당시에는 탄천을 끼고 있는 둔전동과 수진동 일대가 나름의 중심지 역할을 하면서, 1920년대의 도로는 이들 지역을 중심으로 사방으로 전개된 형태를 나타내었다. 일제강점기에 성남 지역은 대로가 통과하지 않았지만 주변에 간선도로망이 비교적 잘 구축되어 있었다. (p.380) 조선시대에 생겨난 낙생장 낙생장(판교장)이 사라진 시점은 정확하지 않지만, 일제강점기에 폐쇄되었다가 부활하여 1970년대 중반까지 이어진 것으로 보인다. 낙생장은 성남시의 모체라 할 수 있는 탄천 유역의 광주군 세촌면∙대왕면∙낙생면∙돌마면의 중앙에 자리하였기 때문에 장을 이용한 주요 고객은 4개 면에 거주하던 사람들이었을 것이다. 낙생장 주변은 장시 밀도가 상당히 높았던 지역이었으므로, 낙생장이 소멸된 이후에 주민들은 주변의 산성장(성내장), 경안장, 송파장, 용인장, 군포천장 등을 이용하는 데 큰 불편이 없었다. 이러한 이유로 낙생장이 소멸하였다고 보는 견해가 지배적이다. 이는 1925년 을축년 대홍수로 송파장의 장세가 크게 위축되어 장시망의일시적인 공백기가 있었음에도 낙생장이 부활하지 못한 요인으로 작용하기도 하였다. (p.399) 잔잔한 이야기를 품은 한옥 디딤돌(장대석)은 동대문 밖 채석장에서 가지고 온 것인데 당시 탄천이 얼어야 하천의 돌 운반이 용이하여 겨울에 옮겼다고 한다. 건물 내부의 문짝은 집안 행사 때 전부 개방하여 넓게 이용할 수 있도록 설치하였다. (p.411) 탄천 33, 43, 54, 89, 112, 130, 152, 160, 245, 331, 369 (p.48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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